2년전 오늘
주목해야할 암호화폐 프로젝트 '테라' - 전종현의 인사이트
2년전 오늘, 군대 싸지방에서 하루종일 테라-루나 백서를 읽으며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하던 시절, 시뇨리지 기반의 알고리즈믹 스테이블코인을 테라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요. 탈중앙화에 대한 공감도 되지 않고 & 크립토 윈터가 오면서 크립토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식어있는 와중에 접한 테라 백서는 다시끔 저를 크립토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당시에 든 생각은 ‘이거 잘하면 진짜로 가능하겠는데?’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알고리즘(코드)만으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개념이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기존 시스템에 비해 가지는 이점도 분명해보였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래수수료 하락).
테라-루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사용처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테라는 차이카드 결제에 테라를 연동하겠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투자포인트였습니다. 커머스 기업을 운영하면서 누구보다 결제 시스템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현성 의장이 직접 펼치는 카드&결제 사업에 크립토가 쓰인다는 부분은 크립토의 진정한 매스어댑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동안 차이카드에서 KRT를 통한 결제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루나 홀더 대상으로 나눠준 차이카드 초대장 덕분에 저는 가장 먼저 차이카드를 접해볼 수 있었고, 한동안 차이카드만 사용하고 다녔으며, 차이스캔을 통해 차이 거래액이 늘어나는걸 보면서, 테라스테이션에서 지갑 수 늘어나는걸 보면서 진짜로 대중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는데? 라는 기대감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참고: 이후에 차이카드에서 테라 KRT로 결제하는건 불가능해졌습니다. 현재 테라폼랩스와 차이코퍼레이션은 관계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디앱 서비스, 특히 앵커프로토콜
차이카드가 계속해서 성장했지만, 차이카드 결제액에서 테라KRT가 사용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차이카드 하나만으로는 매스어댑션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무렵, 테라를 기반으로 한 디앱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건 미러프로토콜이었는데요. 블록체인 통해서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만들었다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장기적으로 모든 주식들이 토큰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앵커프로토콜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이자율 20% 주는게 말이 안된다 + 이자율 20% 받을 바엔 직접 코인 투자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당시 테라 커뮤니티 사람들이 극찬을 하길래 한번 공부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매커니즘을 알아보니 대출 이자에다가 루나의 스테이킹 이자를 합쳐서 20%를 만들어낸다는걸 알게 되었고, 이건 말이 된다고 생각했음은 물론이고 천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립토의 특성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새로운 금융 상품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앵커프로토콜은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 기준으로 따져도 디파이 중에서는 최고로 직관적인 UIUX를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수수료 또한 매우 저렴했기 때문에 기능 하나하나 실행해보면서 디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aUST, bLuna, ANC-UST LP 등 용어만 보았을때 이게 뭐지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직접 작동시켜보면서 아 이건 이런거구나 이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여담이지만 테라-루나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중 하나에는 뛰어난 사용자경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테라스테이션은 어떤 크립토 지갑보다 압도적인 사용자경험을 제공했다고 생각해요)
이후로 테라 생태계는 새로운 디앱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면서 제가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앵커프로토콜을 이용한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등장하면서 (대표적으로 파일론 프로토콜이 있었는데요, 원금보전+플러스 알파라고 생각했던 서비스가 결과론적으로 완전한 손실로 돌아왔네요) ‘머니레고'라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디파이 서비스들이 테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가장 최근에는 루나를 채권처럼 다룰 수 있게 하는 프리즘 프로토콜이라는 또 하나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테라는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인터넷 상으로 옮겨오고 +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디파이 체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 나가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성장과 함께 증가해온 리스크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저에게 테라-루나와 앵커프로토콜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안전하게 20%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내러티브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고 앵커프로토콜에 UST를 예치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UST 수요가 늘어나니 테라-루나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루나가 소각되면서 루나의 가격이 오르게 되었고, 덕분에 루나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니 루나 가격이 상승하고... 이러한 플라이휠이 작동하면서 UST는 DAI까지 추월하면서 스테이블코인 4위를 차지하고, 루나는 전체 시총 순위 10등안에 들어오게 되는 등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테라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 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리스크 또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앵커프로토콜은 근본적으로 UST 대출자가 많아져야 유지가 되는 서비스였지만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20% 이자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게되면서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서비스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테라 UST가 앵커프로토콜에 예치되면서 (최근 기준으로 $17b중 $14b가 앵커 TVL 이었습니다) 마치 테라=앵커프로토콜 같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다보니 앵커프로토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지금 돌아다니는 도권의 "Your mom, obviously." 트윗은 kyle samani가 앵커프로토콜 이자는 어디서 나와? 라는 답변에서 나왔습니다). 매우 합리적인 의문이었고, 실제로 얼마전 돈이 부족해서 LFG(루나파운데이션가드)에서 긴급하게 수혈을 했었고, 가장 최근에는 결국 앵커프로토콜의 이자율을 낮추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앵커프로토콜, 더 나아가 테라 생태계의 리스크는 계속해서 증가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 리스크를 외면했는가
저는 사실 그동안 앵커프로토콜에 예치를 해두지 않다가 정말 최근에 들어서 가지고 있던 루나 일부를 담보로 UST를 빌려서 앵커에 예치를 했었습니다. 이유는 루나가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가격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앵커프로토콜이 어려워지더라도 LFG가 버텨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테라가 계속해서 비트코인을 매수하는걸 보면서 체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그리고 곧 정말 많은 게임들이 테라 체인을 이용해서 출시된다는걸 알고 있었고 (대표적으로 컴투스의 C2X 플랫폼과 더비스타즈 같은 게임이 있었죠) 덕분에 앵커프로토콜에 대부분 묶여있던 사용처가 분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게임들이 하나둘씩 런칭하면 충분한 UST 수요가 만들어지게 될테고, 그래서 앵커프로토콜 대출이 많이 늘어나게 되면 앵커는 지속가능하게 될꺼야 라고 생각한 것이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을 두고서 리스크가 감소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루나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루나는 한때 저에게 말도 안되는 수익률을 가져다준 프로젝트였고, 저도 모르게 루나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확증편향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루나 이야기를 할때마다 항상 뱅크런 리스크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 뱅크런 시나리오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했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런일이 발생하겠어?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페깅이 깨졌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때도 정말 대수롭지 않게 ‘금방 다시 돌아오겠지. 이게 한두번도 아닌데'라고 넘어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페깅이 $0.65에서 $0.8까지 올라왔을 때 루나&UST에 베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페깅이 완전히 복구되었을 때의 예상 수익률을 계산해보았다가 냉정하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걸 인지하고는 절대 베팅하면 안된다는걸 깨달았고 제가 팔 수 있던 테라 관련 자산들을 전부 매도했습니다 (물론 제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루나는 아직도 스테이킹 되어있습니다). 왜 숏을 치지 않았냐는 질문도 들었는데, 저와 2년을 함께한 프로젝트에 숏을 치는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죽음의 소용돌이
테라-루나가 붕괴된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작용했습니다. 앵커프로토콜의 이자율이 진짜로 낮아진 시점이었고, 트론이 ‘우리가 이자율 더 많이 줄께, 우리한테 넘어와'를 언급하던 타이밍이었고(이자율 20% 때문에 남아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자율 많이 주는 프로토콜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 예시: 이 논리로 이번 사태를 예견한 블로거), 때마침 큰 하락장이 찾아왔고(비트코인도 함께 하락했고), 테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커브(Curve)에서 유동성 풀을 교환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이 틈을 타 디페깅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테라-루나 투자자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저는 가장 먼저 앵커에 있던 돈을 인출했고, 저 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도 같은 행동을 취했습니다. UST의 시장 공급이 폭증하면서 더욱 빠르게 디페깅 되어갔으며, 테라-루나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루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없어지게 됩니다. 동시에 테라 알고리즘은 UST를 1달러에 페깅시키기 위해 루나를 무한 발행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테라-루나를 시장에 던지게 되고. 악순환의 플라이휠이 작동하면서 정말이지 순식간에 붕괴하고 맙니다.
앵커프로토콜에 과도하게 집중되어있던 사용처는 테라-루나 시스템이 단 이틀만에 무너지게끔 만들었습니다. 물론 사용처가 늘어났다고 가정해도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속도를 늦췄을 뿐이겠죠. 추가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왜 붕괴 시나리오에 대해서 하나도 대응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한번 붕괴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시스템이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고, 특히나 붕괴되는 과정에서 테라폼랩스(도권)의 커뮤니케이션&리더십은 아쉬운 부분이 많네요. 상황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제가 테라에 대한 소식을 가장 투명하게 접했던 통로는 다름 아닌 루나 밸리데이터였던 DSRV의 김지윤 대표님의 페이스북을 통해서였습니다.
앞으로의 테라는 어떻게 될까
테라-루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렸고, 테라는 구제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새로운 코인을 발행해서 40/40/10/10 비율로 나눠주겠다는 계획인데요. 저는 냉정하게 이는 성공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많은 루나틱들은 실망&패닉을 경험했으며, 테라 위의 빌더들 또한 대부분 다른 체인을 선택하는게 당연한 행동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제가 주목해서 보는 것은 테라폼랩스의 인재들이 과연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입니다. 테라는 국내에서 시작되어 글로벌하게 영향을 미친 프로젝트였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산업에서 이정도로 글로벌하게 사업을 전개한 한국 회사가 그동안 몇이나 될까요?). 테라폼랩스의 인재들은 진정으로 글로벌 경험을 가진 web3 인재들이고, 앞으로 이들과 함께하는 회사들이 차세대 크립토 씬을 이끌 회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테라는 결국 폰지 사기였을까?
이번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굉장히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저는 테라-루나 초기부터 함께 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저와 반대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마도 저와 가장 반대되는 의견은 ‘폰지사기다' 라는 주장인 것 같은데요.
우선 폰지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달러는 아시다시피 담보물 없이도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에 가치가 유지됩니다. 저는 테라-루나를 보면서 실제로 ‘디지털’ 세상에서 달러와 같은 지위를 누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테라가 달러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가치추종물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한 개인&법인이 만들어낸 화폐가 달러와 같은 지위를 누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을 두고 그건 합리적이지 않아, 왜냐하면 역사상 그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했거든 이라는 논리로 반박하는건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라-루나는 일정 부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정말 사용처가 많아져서 꿈꾸는 그림대로 나아갔다면 어쩌면 성공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론적으로는 실패한 실험이 되어버렸지만요. 그래서 단순하게 처음부터 그건 말도 안되는 폰지였어 라는 말을 들으면 어느정도 맞는 말인걸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팩트는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적어도 사기는 아닐꺼라고 생각합니다. 사기=남을 속이는 것을 말하지만, 테라-루나는 처음부터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해온 프로젝트입니다. 매커니즘이 전부 오픈되어 있었고, 활동들은 온체인에 남겨져 있고, 심지어 이번 공격 시발점이 된 커브 유동성 풀 변경까지도 퍼블릭하게 공유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짜고친 사기였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의 크립토 판은
이번 사태가 크립토라는 새로운 기술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크립토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크립토가 디지털 세상에서 가치 전송을 가장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프로토콜이라고 생각하는데는 변함이 없고, 크립토를 이용해 디지털 세상에 차세대 금융 인프라를 만드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테라-루나가 그동안 이러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하고요.)
크립토 윈터가 올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만 만약에 그렇더라도 새로운 크립토 프로덕트는 계속해서 출시되어 세상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Fred Ehrsam이 이야기하듯 크립토 윈터 때마다 2012: Coinbase, 2015: Ethereum, 2018: Uniswap, 2018: OpenSea 같이 최고의 발명품들이 등장하면서 크립토의 영향력을 키워나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저는 여전히 크립토가 매스 어댑션 되기 위해선 스테이블코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용자 입장에서 다른 가치교환 단위보다 달러, 원화 등 법정화폐가 직관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다양한 매커니즘을 가진 진화된 스테이블코인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항상 받는 질문이 ‘그렇다면 크립토라는게 왜 필요한거야? 그냥 기존 인프라 가져다 쓰면 되는거 아니야?’ 인데요. 앞서 이야기했듯 저는 디지털 세상에서 가치 전송을 가장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프로토콜 = 크립토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치전송을 위한 단계를 기존 시스템 대비 훨씬 줄였기 때문에 더 나은 인프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드로 이루어진 세상에는 코드로 이루어진 가치교환수단이 더 나은 호환성을 가져다주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반박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도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를 통해 크립토가 보완해야할 많은 부분들을 학습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규제당국과 합을 맞춰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할 수 있겠구나 (이 관점에서 향후 USDC의 지위가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 개인적으로 매우 강해질 것 같습니다), 무조건적인 속도&가격 상승 지향보다는 사용처를 만들어가면서 하나씩 쌓아 올라가는게 중요하구나, 금융 공격은 언제든 들어올 수 있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구나, 최악의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구나, 거버넌스 코인이 극한의 상황에 치달았을 때 네트워크 수호를 위한 시나리오도 준비해야하는구나 등등을 배웠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는 중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아예 필요 없는 미래도 상상해보고 있고, 테더(USDT) 붕괴 시나리오도 생각해보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지위가 훨씬 강화되는 시나리오도 생각하고 있고, 디파이가 자체 토큰 찍어내면서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것이 하락장에서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키는 시나리오도 재검토 해보고, 크립토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래도, 지금까지 크립토를 공부해왔던걸 돌이켜보면 & 생태계가 커지는걸 관찰해온 입장에선 앞으로도 크립토의 영향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는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재산을 잃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함께해온 무언가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움과 상실감이 큰 것 같습니다. 테라-루나는 지금의 저를 존재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프로젝트였는데 정말 순식간에 이렇게 되어버리니 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립토에 대한 저의 믿음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걸 배웠음은 물론이고 그동안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전화위복 삼아 미래를 그리고 만들어가는데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통해서 테라-루나를 접한 사람들이 많을테고 그중 일부 사람들은 투자까지 했을텐데, 저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테라-루나 투자자들께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루나 코인과 테라의 정확한 폭락 원인과 향후 부활 가능성 - 낭만적 인본주의자
(얼마전 이 글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글을 다 쓰고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제가 쓴 글와 내러티브가 매우 유사하네요. 제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 글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저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낭만적 인본주의자 본인입니다. 포워딩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센티멘탈이 망가진 것은 아쉽지만, 이번 사건도 분명 얻어갈 수 있는 교훈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WAGMI!
너무 좋은 글입니다. 저도 이번일로 많은 자산을 다시 도로 내어주게 되었지만 얻어간 게 더많은 듯 하네요.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말자라는 원칙과 현금화 30%라는 원칙을 세워두었음에도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이 이러한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습니다.
What does no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